
이번에 예스24가 랜섬웨어 피해를 입으면서 감사 이벤트로 1달간 5천원 쿠폰을 주는 이벤트를 했다. 그 덕에 큰 마음 먹고 지른 책. 펄 벅은 사실상 '대지'로 노벨상을 수상했는데 1권을 써서 노벨상을 수상한 이후에 2권과 3권을 냈다. 워낙 유명해 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는데 3권을 한번에 사려니 가격도 읽고 부담감이 있어 늘 장바구니에만 담아뒀던 책이다.
3권 합본 양장본이니만큼 1000페이지가 넘고 책이 정말 정말 무거워서 들고다니면서는 도저히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자기 전에 읽었는데 읽기 시작하니 너무 재밌어서 일주일 동안 매일 새벽 2~3시에 자면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읽으면서 태백산맥 같은 책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중국의 태백산맥이랄까. 물론 대지가 훨씬 더 긴 세월을 다룬다. 1권은 왕룽에 대해, 2권은 그의 아들들에 대해, 3권의 그의 손자 세대까지 다루고 있으니 중국 근현대사를 겪는 3세대를 다 다루는 셈이다. 읽으면서 우리나라도 정말 격변하는 시대였지만 거대한 중국 또한 엄청난 변화를 겪는 모습을 보면서 동병상련 같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이렇게나 격변하는 시대에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조금이나마 느낀 것 같다.
펄 벅 <대지> : 땅에 대한 녹진한 중국인들의 애증
읽으면서 신기했던 부분은 왕씨 3부자의 아들에 대한 집착이다. 아직 결혼을 하기도 전부터 그들은 자신을 이을, 자신을 닮은 아들을 간절히 원한다. 결혼도 하기 전에 아직 한창 젊은 나이에 아들을 저렇게 원하는 심리가 무엇일까에 대한 궁금증이 계속 들었다. 땅에 대한 집착과 무언가 닮아 있는듯 하기도 했다. 불멸에 대한 인간의 열망이랄까?
왕룽은 1권의 주인공이자 왕씨 가문을 일으킨 첫번째 인물이다. 아내인 오란의 덕을 많이 보기도 했지만, 그가 아무것도 없는 농부에서 대지주가 될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는 땅에 대한 집착 그 자체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땅에 대한 애착과 믿음으로 굶어가는 와중에도 땅을 팔지 않고 인내하며 마침내 어떻게든 땅을 더 사는 그의 태도를 보면서 입지전적한 인물을 볼 때 느끼는 감탄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현대 사회에서도 이런 부의 법칙이 많이 바뀌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1권에서 또 정말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왕룽이 대부호가 되면서 그 이후에 변하게 되는 습관과 성격 같은 부분이다. 그렇게나 돈을 아끼고 어떻게든 땅을 사모으던 사람이 엄청난 부를 안정적으로 얻게 되자 점점 여자에 빠지는 과정이 정말 잘 묘사가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아들들은 얼마나 왕룽과 다른 연약한 귀공자로 자라는지도...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는 것일까?
'그러나 렌화에 대한 사랑에서는 그런 만족을 얻을 수 없었고, 또 그녀는 그에데 그런 활기를 주지 못했다... 죽을 지경으로 갈증이 난 사람이 짠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비슷했다.'
'왕룽은 탁자며 의자며 마당의 나무를 보는 것과 같은 눈으로 그녀를 볼 뿐...'
왕룽이 새로운 애인인 렌화를 대하는 모습과 본인과 모든 어려움을 함께한 아내인 오란을 대할 때의 태도가 이처럼 달라졌다. 그러나 이렇게나 애욕에 빠져있던 왕룽도 점차 늙어가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나이를 먹어 갈수록 일을 빨리 마치고, 그날의 남은 시간을 한가하게 앉아서 석양을 바라본다든가, 논밭을 둘러본 뒤에 낮잠을 잔다든가 하는 것이 즐거웠던 것이다. '
왕룽이 고생하고 굶고 성공하고 누리고 늙어가는 모습을 보다보니 우리 삶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왕룽은 결코 착하기만한 자도 아니고 성공하고 조강지처를 홀대하고 원하는대로 여자를 취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성욕에 휘둘리고 비열한 면도 있는 인간이다. 하지만 읽다보면 그의 인간적인 결점과 장점까지 모두 애정어린 시선으로 보게 만든다. 아마 그 이유는 펄 벅이 중국인들을 보는 시선이 아주 따스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읽으면 읽을 수록 더더욱 펄 벅이라는 작가에 호기심이 많이 들었다. 완전한 서양 여성이지만 중국에서 사실상 태어나고 자라서 영혼은 중국인인 그녀 덕에 중국의 민중의 삶을 깊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의 다른 책인 <북경에서 온 편지>도 구입했다. 특히 3권에는 왕룽의 손자가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거기서 겪는 그 오묘한 인종차별과 깊이 있는 교제를 하는 서양인 여성 메리에 대한 생각 등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세심한 심리 묘사를 할 수 있는지 너무나 신기했다.
내가 1년간 스페인에서 겪은 그런 묘한 감정을 글로서 오랜만에 마주하니 신선하기도 했고, 반성도 많이 되었다. 옌의 다친 마음이 너무나 공감되면서도 그의 자존심과 편견 때문에 더 많이 느끼고 경험하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어린 나의 모습을 많이 발견했다. 좋은 소설을 읽다보면 이런 엄청난 순간을 종종 만나는 것 같다. 마치 인생을 다시 사는 것 같은 순간을...
3권에 걸쳐서 왕룽의 아들들까지 3대를 따라가게 되면 인생무상의 순간을 많이 마주한다. 그렇게 땅에 집착하고 강인했던 왕룽이 나이가 들어 자연스럽게 약해지는 모습, 그의 셋째 아들이자 강인한 성정으로 군벌이 된 왕후가 노인이 되어 약해진 모습. 그토록 힘들게 모은 왕룽의 땅을 다 나눠버리고 팔아버리는 세명의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결국 중국이 국가가 아니고서는 땅을 소유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 묘한 기분이 든다.
이런 것을 보고 있자면 옛 로마의 격언이 생각난다. "인간은 싸우고, 승리하고, 죽는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온 인생을 바쳤을까? 카뮈가 말한 사형수의 삶, 패배하기 위한 싸움을 우리는 늘 하고 있다. 이런 것을 되새기면 최대한으로 내 삶을 즐겨야겠다는 결심을 다시 하게 된다.
마지막의 펄 벅의 생애에 대해 짧게 나오는데, 책을 쓰기 시작한 이유가 그녀의 딸이 지적장애가 있기 때문이었다고 나온다. 자기가 죽고 난 뒤에도 딸에게 돈이 많이 필요했기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 생후 6개월의 고아를 주기적으로 입양해 보살핀다.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아이의 마음 깊은 곳에는 커다란 물음표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게 아무리 사랑받고 누군가에게 소중하게 길러진다 해도, 왜 나는 낳아 준 부모에게 버림받은 것일까라는 괴로운 의문이 멤돌며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 아이(양자)들도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어머니 품에서 자라는 것이 아이에게는 최고의 행복이다.'
그녀의 따뜻한 생애를 보면서 왜 이토록 대지가 따스한지 그리고 등장인물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사랑하게 되는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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